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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
2025년 12월 17일(수) - 2026년 3월 22일(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기획전 「DRAMA 드라마」는 회화 속 인물이 어떻게 서사를 형성하며, 감정과 관계를 만들어 내는가에 대한 탐구로부터 출발한다. 인물의 등장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화면에 잠들어 있던 감정이 다시 흐르고 관계가 생성되는 순간을 불러온다. 표정과 자세, 응시와 거리, 역할과 배치는 그 자체로 시간성을 품으며, 정지된 이미지 속에서도 여전히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 드라마Drama >라는 말은 TV 드라마처럼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이야기 구조를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고대 그리스어 (행동하다)에서 기원한 철학적 의미를 지닌다. 즉, 드라마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이며, 사건과 긴장이 응축되는 순간, 삶이 예술의 언어로 나타나는 형식이다. 서동욱, 서상익, 윤미류 이 세 명의 작가는 자신의 그림 속 인물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설정한다. 서동욱은 인물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감정의 온도를 포착하고, 서상익은 한 걸음 멀어진 시점에서 인물과 구조의 관계를 드러내며, 윤미류는 이야기가 생기기 이전, 존재의 기원을 만든다.
 
관람자는 세 개의 무대가 바뀔 때마다 제각각 다른 상황으로의 이동을 경험한다. 1막에서는 관찰자의 자리에서 장면 안으로 들어서고, 2막에서는 한 걸음 물러난 위치에서 구조를 바라보며, 3막에 이르러 인물과 응시를 주고받는 존재가 된다. 회화 속 인물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어떤 인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삶은 무엇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가. 이 전시는 그 질문들로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드라마는 이미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그 무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ㅡ 형다미 /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선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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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서동욱 ㅡ 감정의 감독
 
서동욱의 회화는 관계의 온도를 통해 드라마를 시작한다. 화면 속 청춘들은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 잠겨 있다. 대사가 들리지 않는 이 장면은 표정과 자세, 그리고 두 인물 사이의 미세한 공기 변화로 서사를 만든다. 무엇이라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은 오히려 더욱 현실감으로 다가와, 관람객은 자연스레 그 장면에 자신의 기억을 겹쳐 놓게 된다.
 
서동욱은 감독이다. 배우의 감정을 조율하고, 장면의 온도를 만들며, 인물과의 거리감을 직접 연출한다. 고전 멜로드라마의 카메라가 그러하듯, 작가의 시선은 인물 곁을 천천히 이동하며 감정의 누적을 화면에 응축한다. 이때 관람객의 시점은 일인칭 관찰자로, 현장의 바로 곁에서 청춘의 불안을 엿듣는 증인으로 서 있게 된다. 인물들은 관람객을 의식하지 않지만, 관람객은 장면 속 분위기 한가운데로 이끌린다.
 
그의 그림 속 시간은 흘러가기도, 멈추기도 한다. 사랑 혹은 우정, 시작 혹은 끝, 기대 혹은 불신ㅡ정확히 명명되기 전의 감정이 장면의 중심을 잡는다. 서사적 긴장감은 큰 사건이 아닌, 관계의 모호함에서 발생한다. 인물들은 서로를 향하는 듯하지만 결정적인 표현을 피하고, 그 미묘한 거리감이 오히려 관람객의 상상을 여는 틈이 된다. 그 여백이 바로 드라마의 동력이자 관람객이 스스로 채워 넣는 부분이기도 하다.
 
서동욱은 지나가버린 청춘의 온도를 화면에 남기려 한다. 배우가 연기한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다시 회화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빛의 감정과 공간의 온도, 피부에 닿는 공기의 두께가 회화적 밀도로 번역된다. 이미 흘러간 장면은 아스라한 분위기를 지닌 채, 관람객이 바라보는 순간마다 현재로 다시 태어난다.
 
이번 전시에서 서동욱의 작품은 이미 시작된 줄도 모르는 이야기 속으로 관람객을 어느샌가 슬며시 끌어들인다. 시작과 끝 사이에 있는 상태, 역할이 정해지지 않은 인물들이 머무는 자리. 관람객은 그 장면을 지나며 언어로 남기지 못한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꺼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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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막|서상익 ㅡ 구조의 연출자
 
서상익의 회화는 인물이 그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인물들은 화면 구성의 일부로서 배치되며, 관계의 긴장을 드러내는 요소로 기능한다. 그는 인물이 서 있는 위치, 서로의 거리, 배경과의 충돌을 통해 화면 전체의 구조를 조직한다. 인물은 감정을 드러내는 주체가 아니라 관계의 지표로 등장한다.
 
화면 속 인물은 무대 위 배우라기보다 판 위에 있는 말에 가깝다. 위치와 간격만으로 서사적 긴장이 구축되고, 표정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아도, 배치가 이야기의 구조를 형성한다. 관람객은 화면을 구성하는 관계망 속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무대 밖에 있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이 세계를 응시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어 버리고, 감정보다 사고가 먼저 작동하는 순간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구성 방식은 회화가 사고를 발생시키는 장르임을 상기시킨다. 관람객은 이 장면의 구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자신이 그 안에서 어떤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확인하게 된다. 서상익의 회화는 해석을 지시하지 않는다. 대신 세계가 어떻게 배열되고 작동하는지를 드러낸다. 서사는 관계의 배치 속에서 은밀하게 형성된다.
 
이번 전시에서 서상익은 구조의 연출자로 자리한다. 그는 서사가 움직일 수 있는 무대의 논리를 보여 준다. 인물들과 이미지들은 각기 다른 지점에 놓이지만, 그 배치가 이미 세계를 설명한다. 행동이 없더라도 관계는 긴장을 만들고, 그 긴장이 곧 드라마가 된다. 그의 회화는 관계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제안하며, 관람객은 그 구조를 마주하는 위치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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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막|윤미류 ㅡ 등장인물의 창작자
 
윤미류는 등장인물을 설정하고 창작하는 방식으로 회화를 구축한다. 화면 속 인물은 삶의 장면에서 우연히 발견된 존재가 아니라, 서사가 개입되기 전부터 이미 어떤 역할과 조건을 부여받는다. 이들은 결과물이 아니라, 서사가 생성될 기반으로서 먼저 도착한 존재들이다.

작업은 2020년경, 특정한 목적 없이 촬영한 이미지들을 시간이 다소 지난 후에 회화로 전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윤미류는 그림의 출발점을 발견에서 설정으로 전환한다. 장소, 표정, 긴장된 손끝, 피부의 질감까지 장면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작가의 연출로 배치되며, 사진은 기록이 아닌 캐릭터 구축의 장치로 기능한다.
이 캐릭터들은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감정을 과하게 발산하거나 의미를 고정하지 않는다. 인물의 내면은 표면을 통해 드러난다. 빛, 색, 물성으로 암시되는 인물의 기질과 내면적 힘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감지된다. 관람객의 시선은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고 인물과의 관계 속에 머문다. 관람객은 해석자이기보다, 같은 장면 안에 발을 들여놓은 또 하나의 존재가 된다.
 
최근 작가는 물과 비늘처럼 미끄럽고 변이하는 감각적 속성이 화면을 이끌게 하며, 캐릭터가 특정 정체성에 고정되는 것을 피한다. 이러한 유동성은 회화 안에서 존재의 밀도를 형성하는 조형적 동력으로 작동한다. 인물은 단단하면서도 흔들리고, 자신을 규정하지 않은 채 기민한 감각을 유지하는 존재로 보인다.
 
윤미류의 회화가 제시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인물이 놓여 있는 상태다. 구체적 이야기의 부재 속에서 오히려 존재의 형식이 선명해지고, 회화는 그 형식을 지탱하는 무대가 된다. 우연한 기록에서 기획된 설정에 이르기까지, 윤미류는 등장인물이 존재하는 조건을 확장해 왔다. 지금 관람객 앞에 선 인물은 이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미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서 있다.